48살이 되니까요.
삶이 참 버겁습니다.
돈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세상 때문인지… 이제는 뭐가 이렇게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너무 외롭고 힘이 부치는 삶입니다.
저는 4살 때 가족과 헤어졌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미아가 되었고, 그 뒤로 40년이 넘는 시간을 가족도, 뿌리도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버텼고, 먹고살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아들만 넷인 아빠가 되어 있네요.
그런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너무 아픕니다.
어릴 적 가족을 잃어버려 미아가 되었고, 사실상 고아처럼 살아왔습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무학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기댈 가족도, 등 뒤에서 밀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1996년, 정말 어렵게 호적을 취득했습니다.
그 뒤로는 살아남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남들 쉴 때도 쉬어본 적 없고, 단 하루도 인생이 편하다고 느껴본 적 없이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면서 사업도 키워봤습니다.
한때는 연 매출 200억 가까이 올라가며 정말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이제는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삶은 또 저를 무너뜨리네요.
믿었던 사람들과 관계도 무너지고, 평생 바쳐 일궈온 사업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업이 무너지면서
아이들 얼굴조차 마음 편히 보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나는 평생 가족이 그리워 살았는데, 정작 내 아이들에게조차 따뜻한 가족의 울타리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집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고모… 가족이라 부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 번은 저한테 그러더군요.
“아빠는 왜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이들 앞에서는 웃었지만 혼자 있을 때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집안은 이런 집안이다”
“너희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었다” 그 흔한 이야기 하나 해줄 수 없습니다.
1996년에 어렵게 호적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 방계족보 본관쪽에서 소송을 하였는지
2004년 가정법원 직권 호적예규로 주민등록번호 변경
결국 기존 호적에서도 파여졌고, 나는 사실상 새로운 본관의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양 김씨.
그렇게 나는 한양 김씨 1세, 우리 아이들은 2세가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이 부분이 너무 슬프고 가습이 아립니다.
뿌리를 모른 채 살아온 인생. 그리고 이제는 내 아이들까지
그 외로움 속에 남겨지는 것 같아서요.
삶이 너무 힘들어 가끔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나 하나 믿고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내가 무너지면
이 아이들은 세상에 정말 혼자가 될 것 같아서 또 버터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힘드네요.
그런데 요즘은 정신도 점점 피폐해지고, 마음도 많이 무너져갑니다.
앞으로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 버텨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내 핏줄. 내 가족.
엄마라는 존재…
아빠라는 존재…
가족이라는 존재...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같은 숨을 쉬며 살아가고 계신 건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나셨더라도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라도
알고 싶습니다.
내 뿌리가 어디인지…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사람인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한자에 ‘고아’는 외로울 고(孤), 아이 아(兒)라고 하더군요.
평생 정말 외로운 아이처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높을 고(高), 아이 아(兒).
高兒.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외로운 아이가 아닌,
高兒(고아), 외롭지않은 높은 아이로 살아가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