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선] ‘책상에 탁’과 ‘탱크’… 스타벅스가 조롱한 대한민국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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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8일 오전 10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흔이자 숭고한 이정표인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당일, 스타벅스 코리아가 선보인 마케팅 포스터는 한국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5월 18일이라는 날짜 옆에 배치된 ‘탱크데이’라는 문구, 그리고 그 곁을 채운 “책상에 탁!”이라는 다섯 글자. 46년 전 광주를 짓밟은 계엄군의 군화발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던 군부독재의 파렴치한 변명(“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이 커피 전문점의 텀블러 판촉물 위에서 기괴하게 결합한 순간이었다.

이에 국민들의 여론이 폭발하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당일 오후 손정현 대표이사를 전격 해임하는 등 고강도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신세계 총괄부사장이 광주로 내려가 고개를 숙였으나, 5·18 단체는 “젊은 직원의 실수라는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며 사과 방문을 거절했다.

이는 당연한 처사일것이다. 수많은 결재 라인의 눈을 무사히 통과한 이 포스터는 단순한 ‘실무자의 실수’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 깊게 뿌리내린 역사의식 결여와 윤리적 불감증이 만들어낸 필연적 참사이기 때문이다.

기업 분석 전문가들과 언론, 시사 유튜버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리스크는 단순히 한 장의 포스터가 가진 자극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간 신세계그룹 체제 아래에서 스타벅스 코리아가 걸어온 고질적인 ‘체질 변화’의 부작용이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발현된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과거 스타벅스는 공간을 팔고 문화를 파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스타벅스는 커피의 본질보다 텀블러, 레디백, 캐리백 등 ‘한정판 굿즈’를 쥐어짜듯 찍어내는 유통회사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매달 무리하게 새로운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자극적인 마케팅 문구로 소비를 유도하다 보니, 마케팅 부서가 조회수와 매출 지표에만 매몰되어 역사의식이라는 최소한의 브레이크마저 상실했다는 진단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세계가 인수한 이후 품질 관리(QC)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2022년 대규모 리콜을 부른 ‘서머 캐리백 발암물질(폼알데하이드) 검출 사태’ 당시의 늑장 대응, 매장 종이 빨대에서의 휘발유 냄새 논란, 가습기 화재 위험 리콜 등은 독보적이었던 스타벅스의 브랜드 신뢰도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안전과 품질에 대한 기본기조차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교한 리스크 스크리닝이 작동할 리 만무했다.

신세계 특유의 ‘이마트식 가성비’가 이식되면서 미국 스타벅스 고유의 고급스러운 감성과 프리미엄 가치가 완전히 퇴색했다는 비판도 뼈아프다. 종이 빨대의 눅눅함에 대한 불만은 고질적이며, 내용물이 부실해진 샌드위치는 온라인상에서 ‘창렬화 논란’을 낳았다. 타 대형 카페나 저가 커피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잃어버린 채 오직 비용 절감과 효율성만을 좇는 구조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을 묶어두던 핵심 무기였던 멤버십(별 리워드) 혜택 역시 기업 편의대로 야금야금 축소되었다. 리워드 기준을 개편해 실질적 혜택을 줄이고, 최근에는 유료 멤버십(버디패스)까지 출시하며 ‘소비자 지갑 털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을 샀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식어버린 마니아들은 이번 ‘탱크데이’ 사태를 계기로 대거 카드 환불과 탈퇴 인증 릴레이를 벌이며 폭발적인 등을 돌리고 있다.

스타벅스는 직원을 ‘파트너’라 부르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지난 2021년 과도한 프로모션과 인력 부족을 견디지 못한 매장 직원들이 ‘트럭 시위’를 벌였던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본사의 무능과 검수 부재로 터진 대형 사고의 불똥은 결국 매장에서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현장 바리스타들에게 떨어졌다. 구조적 모순이 아랫물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시장 경제에서 소비자는 더 이상 제품의 편리함이나 맛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우리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있는지 매섭게 감시한다.

신세계와 스타벅스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대표이사 해임’과 ‘임직원 징계’라는 꼬리 자르기식 인적 쇄신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1980년 독재의 군화발에 짓밟혔던 광주의 아픔과 차가운 대공분실에서 스러져간 청년의 죽음은 결코 텀블러 마케팅의 유희적 수식어가 될 수 없다. 내부의 곪아 터진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역사를 잊은 기업에게 소비자가 허락할 미래는 단연코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