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져야 할 언어인데 없어지기는 커녕 나날이 늘어나는 말들이 있다.
⑴ 나오셨습니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보다 낮아졌다. 아무리 물신주의가 팽배한 세상이라지만 언제부터 물건이 사람보다 높아졌는지 모르겠다. 서비스업은 자기를 최대한 낮춘다지만 물건에게까지 낮추고, 일개 커피와 음료나 의류 등 물건들마저 ‘나오시는’ 세상이 되었을까. 물건뿐 아니라 할인 감면이나 무료제공 등 도 ‘서비스 안되시구요’ ‘무료가 되십니다’라고 귀해진 세상인데, 모두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그들이 정상이고 내가 유행(trend)을 못 따라가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잠시 고민할 지경이다.
그런데 저렇게 사물을 높이는 ‘나오셨습니다’ ‘되시구요’라고 말하는 서비스 종사자 상당수도 저게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는게 함정이다. 몰지각을 넘어서 무식이 자랑인 일부 소비자들이 사물 높임을 하지 않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할인이 가능합니다”라고 말하면 “왜 나에게 반말하느냐 여기는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냐”라고 따지는 통에, 그냥 모두에게 틀리기 말하면 문제가 안 일어나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점을 기준으로 삼는 일이 안 좋은 결과로도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⑵ 같아요
자신의 의견을 명백하게 결론내면 책임을 지기 쉽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제 한국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든, 공식적인 의견을 개진하든, 현상을 분석하든, 과거를 이야기하든 무조건 문장을 ‘같아요’로 맺는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20-30년 전 뉴스 인터뷰를 보면 ‘같아요’라고 맺지 않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네가 한 말이 너 말고 네 주변, 네 가족, 네가 속한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공포가 책임회피를 생활화한 ‘같아요’라는 맺음말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언론조차 ‘보인다’ ‘전해졌다’ 등 회피기동이 기본인 문장으로만 구성된 시대에 ‘같아요’를 무턱대고 막기도 어려워보이긴 한다.
⑶ 솔직하게 말해서
심지어 출간한 지 20년이 지난 이원복 전 덕성여대 총장의 저서에도 나온다. 말할 때마다 ‘솔직하게 말해서’를 붙이고 있다는건 평소에는 늘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유명 컨설팅회사 한국법인의 한 임원이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할 때에도 “한국 학생들은 면접에서까지 ‘솔직하게 말해서’를 입에 달고 있는데, 평소에는 솔직하지 않아서 그러느냐”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이제 ‘솔직하게 말해서’좀 그만하자. 평소에 늘 거짓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만,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피하고 에둘러 비유하고 다른 이야기로 돌리면서 상대방이 알아듣기를 기다리는 문화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직설적 이야기에 앞서 ‘지금은 비유적으로 돌려 말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해주는 것이 예의라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영어권에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류의 관용구가 없지 않은 것을 보면(영화 다크나이트라이즈에서 폭스가 웨인의 약점을 쥔 회사 직원에게 건네는 대사 등) 한국문화권에서 없어지기 쉽지 않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