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오전 화순으로 향하던 미니버스에 공수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해서 18명 중 15명을 사살하고 남은 사람 3명 중 중상자 2명을 공수부대원들이 데리고 가자 상급자로부터 '왜 데려왔냐,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총살하여 암매장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의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과 7공수여단 출신 최영신이 주남마을 총격사건의 진실을 증언하면서 밝혀졌다.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은 1988년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저희들이 차에서 살려달라고, 여학생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고 그러는데도 계속 총알이 날아오고
(중략)
대검을 탁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너도 유방 하나 잘리고 싶냐' 그러더라고요 "
1988년 광주 청문회 증언 中
당시 숨진 사람들의 몸에는 모두 .223 레밍턴 총알이 박혀 있었고 몇몇 시신에서는 총검에 찔린 상처도 발견된 걸로 보아 확인사살이 이뤄진 걸로 보인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21일 도청앞 집단발포는 자위권 행사 차원이었으며, 그 자위권 행사의 근거로 들어진게 바로 계엄군 병사의 사망사건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계엄군 장갑차에 불이붙자 갑자기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해서 병사가 사망했다고 서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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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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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하고 있던 문서들중 80년 당시 11공수여단 63대대 이모대위의 진압작전 수기에서 병사의 사망은 계엄군 장갑차에 의한것이었다는 진술이 발견된것. 또한 61대대 1지역대 김모 중대장도 95년 검찰조사에서 같은 진술을 했으며 62대대 대대장 무전병인 박모 일병도 2006년 국방부 과거사 조사에서 화염병 투척에 계엄군 장갑차가 갑자기 후진해 위에서 쉬고 있던 두 병사가 계엄군 장갑차에 깔린것이란 증언을 한것도 확인되었다. 또한 62대대 한모 일병은…